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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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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딸기·바나나·참외·자몽·오렌지·청포도·블루베리·방울토마토…. 좌판 위에 펼쳐 놓은 나무 상자에 먹음직스러운 과일이 담겨 있다. 따스하고 훈훈한 봄바람이 불자 좌판 주위에 이내 향긋한 냄새가 피어났다.

"안녕하세요~! 밴드명이 어떻게 되시죠?" / "000이요!"

"사과 한 봉지 오렌지 한 봉지 주문하신 것 맞으시죠?" / "네, 맞아요."

낱개 과일도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시대다. 3월 30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복합문화관 앞 인도에서 '그때그때과일' 대표 김정훈 목사(43·힐링힐처치)가 예약자들에게 과일을 팔았다. 1톤 트럭에 과일 상자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처음 국제도시에서 장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분주한 모습을 상상했다. 막상 와서 보니 김 목사가 장사하는 곳은 유동 인구가 별로 없었다. 지나가는 차도 많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장사가 되긴 할까' 생각이 들었다. 기우였다. 김 목사는 인터넷 '밴드'에서 예약을 받아 장사한다며 명단을 보여 줬다.

김정훈 목사는 자비량 목회를 한다. 과일과 기독교 용품 등을 유통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교회 살림까지 챙긴다. 처음부터 자비량 사역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문 고민, 그리고 기도가 그를 지금의 길로 이끌었다. 현재 두 가정, 청년 6명과 함께 예배하고 있다.

찬양 사역자, 삶과 신앙 사이에 괴리감을 느끼다

CCM 워십이 한창 유행했던 1990대 초반. 김 목사는 익산에서 찬양 사역자로 활동했다. '하시엘'이라는 찬양팀을 만들고 정기 공연을 했다. 말씀을 깊이 공부하기 위해 지방 신학교를 거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2002년 서울에 있는 중형 교회 부목사로 지내며 찬양 사역뿐만 아니라 교육, 심방 등 일반 사역도 병행했다. 사역을 하면서 김 목사는 '신학적'인 고민이 생겼다.

교인들 삶을 지켜보며 괴리감을 느꼈다. 교회 안과 밖의 삶이 달랐다.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고난과 어려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기도하세요", "고난을 잘 감당해 내세요",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겁니다" 식으로 결론 냈다. 교인들은 좋든 싫든 "아멘"이라 답했지만, 김 목사가 봤을 때 교인들 삶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심방 가는 날이면 한 집에 2~3시간씩 머무르며, 교인들 이야기에 집중했다. 반응은 좋았다. 교인들은 스쳐 지나가는 목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함께 여행도 다녔다. 담임목사도 김 목사의 사역을 존중해 줬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열심히 한다 했지만, 교인들 삶은 변화가 없었다. 신앙 따로 삶 따로였다. 김 목사는 말씀이 교인들 삶에 체화되지 않는 이유를 찾기로 결심했다.

2013년 교회와 미래 인재를 연구·분석하는 한 연구소에서 들어갔다. 비슷한 시기 서울 강남에 교회를 공동 개척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공동 목회와 연구소 활동에 문제가 생겼고, 연구소와 교회를 나오게 되었다. 순탄했던 삶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광야에서 보낸 '6개월', 절박함을 배우다

   
▲ 직접 돈을 벌기 전까지 교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다. 김 목사는 일하면서 헌금의 가치와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직장과 교회를 잃은 김 목사는 6개월을 흘려보냈다. 모아 놓은 돈은 다 써 버리고, 매달 조금씩 들어오던 후원도 끊겼다. 다섯 식구는 그렇게 위기에 내몰렸다. 아내와 다툼이 늘어만 갔다. 부부 싸움을 지켜본 아이들은 겁에 질렸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니 삶이 무의미해졌다. '이렇게 지내다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통장 잔고가 '0'에 가까워질수록 가정이 흔들렸어요. 결혼하고 나서 '돈' 문제로 부부싸움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서로 대화도 안 하게 되고, 아이들에게는 소리만 지르고…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죠. 가장으로서 돈을 못 버니 자존감만 떨어졌어요."

회상하는 김 목사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나고 나서야, 김 목사는 그것이 일반 교인들 삶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이 직장을 관뒀을 때 느끼는 '무게감'을 느낀 것이다. 당장 기성 교회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기회에 일반 교인들처럼 세상 일을 경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2014년 2월 교회 음향 기기를 파는 영업을 했다. 아는 목사에게 연락도 하고, 가까운 교회를 찾아갔지만 생각만큼 잘 팔리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다른 종목에 도전했다. 생명의말씀사를 소개받고, 책과 전도 용품 등을 팔았다. 첫 달 매출 1,000만 원을 기록했다. 수익의 15%가 김 목사 몫으로 돌아왔다. 블로그를 운영하며 본격적으로 중간 유통에 뛰어들었다. 매출이 조금씩 늘면서, 경제 형편도 나아지기 시작했다. 일에 재미를 붙였다.

여기서부터 김 목사의 사역이 시작됐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이, 가정을 돌봐야 하는데 막막한 사람들이나 취업이 안 되는 청년들에게 혹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방법을 알려 주면 그들도 이만큼 벌어서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한 달에 250만 원이면 한 가정 정도는 살 수 있다고 봤어요."

   
▲ 김 목사가 담임하는 힐링힐처치에는 십일조가 없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헌금을 쓰라고 한다. 김 목사는 "자신의 가정이 어렵다면 가정을 위해 십일조를 쓰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고 부탁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십일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김 목사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 줬다. 일곱 가정이 김 목사 소개로 과일을 유통하고 있고, 지인 청년은 교회 음향 기기를 팔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 목사가 금전적으로 취하는 이익은 전혀 없다. 다만 김 목사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꼭 10%는 이웃을 위해 써 달라고 부탁한다. 김 목사는 수익의 10%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 지역 독거노인들에게 과일을 제공하고, 식사비와 교회 임대료로 쓴다.

"처음 물건을 공급해 줄 때 '선생님 가정이 먹고사는 문제에 매여 있지 않으면, 주변을 도와 달라. 그것이 교회 다니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해요. 가정이 사는 것뿐 아니라 지역 주민과 함께 혜택을 누리자는 취지에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수익의 10%를 이웃과 나누고 있어요."

직접 돈을 벌어 보니 느끼는 것도 많다. 기성 교회에서 사역할 때 교인들이 챙겨 주는 '교통비'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됐다. 헌금의 의미도 새롭게 다가왔다. 김 목사는 헌금을 '절박함'으로 벌게 된 소중한 물질이라고 규정했다. 절박함을 알게 된 김 목사는 교인들에게 헌금을 강요하지 않는다. 형편이 어려우면 교회에 십일조 내지 말고, 가정을 위해 사용하라고 말한다.

"딸기 1박스를 팔면 제 손에 500~1,000원이 남습니다. 힘들게 돈을 벌어 보니 알겠더라고요. 강단 위에서 '예배 열심히 나오세요', '기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고 말한 게 너무 부끄럽고 죄송하더라고요. 일주일 내내 힘들게 일하는 분들에게 수요 예배와 금요 철야 예배를 강조했으니까요. '성도들 삶을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나쁜 목사였구나' 생각이 들었죠. 오히려 교회 모임을 줄이고,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거나 쉴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어야 했죠. 이걸 깨닫고 나서 진짜 많이 울었어요."

작은 변화로 큰 변화 이뤄야

김 목사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렇게 될 경우 사회도 개혁되고, 변화될 것으로 믿는다. 다만 사회가 급진적으로 변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하나씩 하나씩 주위에서 서로 돕고 만들어 가다 보면 좋은 세상이 펼쳐질 것으로 믿는다.

"6개월 동안 힘들었고, 많이 싸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웃을 수 있게 됐어요. 우리 이웃 가정의 아빠, 엄마, 아이들이 함께 웃는 날이 많아지길 소망해요. 가정에 웃음이 생기면, 지역에도 웃음이 생기고, 세상에도 웃음소리가 가득해 질 것이라고 믿어요."

   
▲ 김 목사가 생각하는 '영성'과 '복음'은 삶과 직결된다. 단순히 예배에 참여하고, 기도만 해서는 안 된다. 김 목사는 "그리스도인의 길은 세상 속에서 이뤄 가는 것이다. 영성은 세상 속에서 이뤄 내려는 '열정'이자 '갈망'이다"고 말했다. 복음도 마찬가지다. 교회 안에서 '언어'로만 남아서는 안 되고, 삶 속으로 파고들어 가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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