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급여체제에 대한 성경적 이야기

by 씨앗스토리 posted Aug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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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스토리 - 돈에 대한 좀 더 긴 이야기>

 

씨앗스토리 중 돈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자

 

근래 지속적으로 교회에서의 재정 사용원칙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문제점이 더 크게 부각되고 상대적 약자(부교역자, 찬양사역자...)들의 이야기들이 많다.

그렇다면 과연 교회의 역사와 신학 속에서 이에 대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교회공동체에서 중요한 자와 덜 중요한 사람은 어떻게 구분되며

그들의 역할에 대한 교회에서의 값어치는 얼마였을까?

 

담임목사의 역할은 주방봉사의 권사님보다 더 중요할까?

설교는 찬양인도보다 더 높은 값어치의 사역일까?

부교역자가 100만원을 받는다면 주보를 건네주는 안내집사는 얼마를 주어야 할까?

 

초대교회의 예배에 대한 사료들에 나오는 몇가지 사실을 살펴보자

먼저 그 당시 양대 종교계층이었던 사두개인과 바리새파는 어떠했을까?

사독 제사장의 후예들이란 이름의 사두개인들은

구약성경에 나와있는 권리(?)에 따라 일정의 생활비를 지원받았다.

그러나 이들이 권리에 집중한 나머지 의무에 소홀했기에

말라기 선지자의 경우 이들의 재정사용 의무에 대해 비난하였다.

즉 그들은 그들의 편리와 생활의 안정을 위해 재정을 사용하는 것만큼

주변의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돌봐야 하는 의무가 있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이러한 이들을 비난하며 나타난 이들이 랍비들이었다. (바리새인)

‘파리새’ 라는 히브리어 단어처럼 그들과 ‘구분된’ ‘차별화된’ 사람들이었다.

사두개인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받은 것들을 가지고 값을 받는 다는 것을 비난하며

그들은 주중에 일하며 안식일에 돈을 받지 않고 봉사와 헌신으로 사역을 해왔다.

(어찌보면 개신교의 목회자의 모습과 가장 흡사한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거니와 바울은 이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이었기에 그 영향을 받았다.

그렇다고 오늘 우리가 바리새파의 전통을 따라야 할 당위는 터무니 없는 주장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초대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그 재정을 사용했을까?

그들 중에는 설교를 해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봉사를 해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예배를 준비해야 하는 사람도 있었기에 말이다.

 

오래전 그들은 이러했다고 한다.

안식일날(때론 안식후 첫날, 역사적으로 주일이라는 개념이 자리하기까진 그들의 모임시간은 다양하였다.) 각자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먹을 것을 준비했다고 한다.

어떤이는 많은 음식을, 어떤이는 적은 음식을, 어떤이는 그저 몸뚱아리만 오기도 했다.

왜 이것밖에 가져오지 않았냐고 묻는 이도 없었다.

 

그들은 각자 가져온 음식을 앞 테이블에 가져다 놓고(추후 이 테이블은 봉헌대로 변하였다)

예배를 인도하는 이가 감사의 기도를 하였다.

그리곤 한사람씩 나와 이것은 우리의 권리이며 의무이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며

이를 통해 예수님의 생명을 얻고 그 뜻대로 살아가야 함을 다짐하였다.

배고픈이는 많은 음식을, 배부른 이는 적은 음식을,

구제의 대상이 될만큼 가난한 사람들은 더 많은 음식을 취하였다.

 

그리곤 충분히 그 음식을 공동체 내부에서 함께 나눈후

사람들은(후에 디콘(집사)들의 모임인 디아코니아에서 이 일을 진행하였다.)

이 음식들을 공동체 외부에 있는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골고로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은 10세기 이전까지 건강한 공동체를 통해 이어졌고

안타깝게도 그간 교회 공동체를 종교조직화하려는 시도들과

국가권력과 시스템을 동조하려는 이들로 인해 소수의 모습으로 전락하였다.

 

그리곤 잃어버린 전통과 원칙을 다시 살리고자 여러시도들이 있었다.

종교개혁 당시 종교전문가 집단을 없애고 장로들로 운영하려는 시도들이나

공동체로 살아가며 공유하는 시도들이 있었으나

오늘날의 대다수는 그 전통과 원칙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였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목회와 사역의 전문가들이 대리로 운영하고

그 전문성에 대한 댓가를 얻는 종교단체가 아니다.

가족과 같은 공동체로 부르신 교회는 유기적이며 관계적인 존재이다.

존재를 값어치로 따지는 일이 현대사회에서 보편적인 사고방식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가치에 따라 교회가 변해가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여전히 가족과 같아서

누군가 어려움을 처해있다면 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그 DNA 이다.

박사학위가 있고, 교회운영의 성공경력이 있으며, 임팩트있는 설교자로서의

그 능력에 값어치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한 일원이 아무 가치가 없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사람일찌라도

그가 구제를 받아야 할 대상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에게 교회의 재정을 건네주는 것이다.

 

목회자도 부교역자도 교회이며 공동체라면

그들 역시도 사역과 교회일에 과중하여 구제를 받아야할 대상이 된다면

‘가난해진만큼’ 덜 가난한 사람보다 더 받아야 하는 것이다.

 

 

&lt;에세이&gt; 눈물로 호소하여 삭감을 피한다